[이슈] "내 제안이 사업이 되네?"...HD현대에선 지금 직원들 아이디어가 샘솟는다
[이슈] "내 제안이 사업이 되네?"...HD현대에선 지금 직원들 아이디어가 샘솟는다
  • 배석원 기자
  • 승인 2024.02.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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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성공한 RC 덕후"...회사에 제안했더니 센터가 생겼다
"틀 깨고 과감하게 아이디어 냈더니"...세계 최초 개발 사례
"나도 아이디어 한 번 내볼까?"...HD현대 "드림큐브로 드루와"

경기도 성남 판교에 있는 HD현대 글로벌 R&D센터(GRC). 최근 7층에 새로운 공간이 생겼습니다. '버츄얼트레이닝센터(Virtual Training Center)'입니다. 가상현실공간(VR)에서 굴착기를 조종할 수 있고 VR장비를 쓰면 정비 교육도 받을 수 있습니다. 실제 크기의 14분의 1 사이즈로 만들어진 RC(Remote Control)모델 굴착기와 휠로더, 굴절 덤프트럭 등도 운용할 수 있습니다. 한 마디로 '건설중장비 미니 훈련소'입니다. 이 훈련센터 특징은 디테일에 있습니다. 굴착기 조종석과 조이스틱, 미니 RC모델의 작동방식과 세부 사항을 튜닝해 최대한 실제 굴착기를 작동할 때와 같은 느낌을 받도록 재설계한 것입니다. 구축 비용만 2억원 안팎이 소요됐는데, 임직원 교육 등 경제적 교육 효과는 투자비용 보다 훨씬 더 클 것으로 기대되고 있습니다.

HD현대 글로벌R&D센터에 개소한 버츄얼 트레이닝 센터에서 HD현대사이트솔루션 조영철 사장(왼쪽)과
HD현대건설기계 최철곤 사장(오른쪽좌석)이 VR건설장비를 조종하고 있다. [사진=HD현대사이트솔루션]

◆ "저는 성공한 RC 덕후"...회사에 제안했더니 센터가 생겼다
지난주 HD현대 건설기계(현대사이트솔루션·현대건설기계·현대인프라코어) 3사 10명의 직원이 이 센터에서 첫 교육을 수료했습니다. 1회차 교육만으로도 학습 만족도 높다는 이야기 퍼지고 있습니다. 이날 강사로 나선 이는 오대진 HD현대사이트솔루션 책임연구원. 그는 자신을 '성공한 덕후(한 분야의 전문가 이상의 열정을 가진 사람)'라고 설명합니다. 그는 이곳을 '놀이터'라고 부릅니다. 이유는 최초 버츄얼트레이닝센터를 회사에 제안한 당사자이자 실제로 RC마니아이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 훈련센터가 굴착기 입문 과정에서 효과를 톡톡히 발휘할 수 있다고 확신하고 있는 사람 중 한명입니다. 그 근거는 본인의 경험에서 나옵니다. 오 책임연구원은 굴착기와 휠로더, 지게차까지 3개 자격증을 지난 한해에 잇따라 따냈습니다. 현재는 불도저 자격증 취득을 준비 중입니다.

중장비 RC모델 훈련 아이디어를 회사에 제안한 오대진 HD현대사이트솔루션 책임연구원

그가 자격증 취득을 위해 준비한 공부 방식은 바로 이 RC모델 훈련법입니다. 오 책임 연구원은 "RC모델이 생각보다 정교하다"면서 "조작감은 거의 동일하고 직접 운전해봤을 때 실제 굴착기와 90% 이상 육박하는 싱크로율을 느낄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임직원의 굴착기 교육 프로그램으로도 활용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던 걸까. 오 책임의 개성있는 아이디어를 포착한 것은 회사였습니다. 오 책임이 RC 장비 활용 의견을 회사에 제시했고 회사가 아이디어를 수용하면서 인사·교육팀이 운전교육장 구축에 속도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이 안이 경영진 의견까지 반영되면서 지금의 GRC 센터에 설립하기에 이른 겁니다.

 '래싱프리 컨테이너운반선' 개념도 [사진=HD현대중공업]

◆ "틀 깨고 과감하게 아이디어 냈더니"...세계 최초 개발 사례
이처럼 직원 아이디어를 회사가 채택해 사업화 등 실행으로 옮기는 일은 HD현대 전 그룹사에선 익숙한 문화입니다. 울산 사례도 그런 경우입니다. HD현대중공업은 2021년부터 '선박구조혁신과'를 만들어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조직은 HD현대중공업 선박해양연구소에서 처음 파생됐습니다. '선박구조와 관련한 혁신기술을 과감하게 만들어 보자'는 것이 탄생 배경입니다. 선박구조혁신과 소속 직원 10명 내외. 10~15년차로 경력자로 채워진 작지만 단단한 부서입니다.

이 조직도 아이디어 논의가 활발한 것이 특징입니다. 선박구조혁신과 관계자는 "현업 부서로부터 시장 요구사항을 파악해 아이디어를 내는 방식으로 프로젝트를 선정하고 있다"면서 "때로는 업무 수행 도중 나온 팀원들의 아이디어를 채택해 구체화(사업화) 시키는 일을 한다"고 말했습니다. 레싱프리 컨테이너선이 대표 사례 중 하나입니다. 일반적으로 컨테이너선은 화물창 내부 적재물을 채운 뒤 덮개(해치커버)를 닫고 다시 그 위에 컨테이너를 적재합니다. 이때 실어올린 컨테이너가 항해 중 흔들리지 않도록 단단히 잡아주는 래싱브리지(Lashing Bridge)라는 구조물로 고정하는 작업을 '래싱'으로 부릅니다. 

래싱 작업은 업계에선 100년 넘게 유지되 온 방식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선박구조혁신과가 도출한 아이디어는 한 마디로 래싱이 필요 없는 선박을 개발한 것. 기존의 틀을 아예 깨버린 버린 겁니다. 이는 세계 최초 개발 사례로 꼽힙니다. HD현대중공업은 이 개발 사례로 2022년 11월, 미국선급협회(ABS) 등으로부터 설계 승인을 획득했고 국내외 특허출원까지 완료한 상태. 현재는 이 기술이 국제해사기구(IMO)로부터 국제표준 솔루션으로 채택될 수 있도록 추진 하고 있습니다. 회사는 혁신적인 아이디어를 지속적으로 발굴하기 위해 이 팀을 순환 근무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이 팀에 들어온 지 1년이 지나면 일부 직원은 나가고 새로운 구성으로 다시 채워집니다.

HD현대 글로벌 R&D센터(GRC). [사진=HD현대]

◆ "나도 아이디어 한 번 내볼까?"...HD현대 "드림큐브로 드루와"
2023년 HD현대 기업문화 조직은 새로운 제도를 도입했습니다. 제도의 명칭은 '드림큐브'. HD현대 전 계열사 적용된 드림큐브 제도는 임직원들의 창의성과 아이디어에 힘을 실어주는 '사내벤처제도'입니다. 임직원이 속해 있는 기업 사업과 연계된 아이디어를 주로 접수 받고 있지만 별도의 세부 카테고리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입사 이후 '회사 좀 다녔다'는 3~4년차부턴 직급 제한 없이 사업 아이디어로 지원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드림큐브'의 반응은 뜨거웠습니다. 작년 3월부터 전 계열사에서 제안을 접수받기 시작했는데 총 239개 사업 아이디어가 모인 겁니다. 심사를 거쳐 3D프린팅, 크레인 인공지능(AI), 전장 회로 설계, 접이식 비계, 중장비 장난감 등을 주제로 한 최종 5개 팀이 지난해 7월 선발돼 사업을 지원 받고 있습니다. 지원 기간은 약 1년. 팀당 사업비 1억 5000만원에 전문가 멘토링, 사업 네트워킹 컨설팅, 독립된 업무 공간까지 지원하고 있습니다. HD현대 판교 GRC가 사내스타트업의 요새 역할까지 겸하는 겁니다.

 HD현대 정기선 부회장이 지난 미국 라스베이거스 열린 CES2024 현장에서 인류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인프라 혁신 비전 '사이트 트랜스포메이션'을 주제로 연설하고 있다. [사진=HD현대]

'직원이 일하기 좋은 곳으로 만들겠다'는 것은 HD현대가 추진하고 있는 방향성 중 하나입니다. 정기선 부회장은 2022년 12월 열린 HD현대 50주년 비전선포식에서 "HD현대가 정말 ‘일 하고 싶은 회사’, ‘여러분의 꿈을 마음껏 펼칠 수 있는 회사’가 될 수 있도록 경영진을 비롯한 리더들이 먼저 나서서 적극적으로 노력하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드림큐브'도 그런 노력의 산물 가운데 하나인 셈입니다. 

한편 HD현대의 사내벤처 1호는 지난 2020년 12월 출범한 선박 자율운항 시스템 전문기업 아비커스로 기록돼 있습니다. 아비커스는 2022년 6월 세계 최초로 대형 선박의 태평양 횡단에 성공하는 등 첨단 항해보조 및 자율운항 솔루션 분야 선도기업으로 성장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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